"친구들과 이야기하는원자력 안전" 7.원자력 안전의 기본개념

Atomic Wiki
이동: 둘러보기, 검색

[친구와 이야기하는 원자력 안전-7] 원자력 안전의 기본 개념

오랜만에 단비가 내리네요. 이번주 초 미루었던 숙제를 마무리합니다...

(원자력과 방사선에 대한 기본적인 사항을 다루었으니, 지금부터는 원자력 안전 문제를 살펴보겠습니다. 원자력발전소를 대상으로 합니다만, 많은 내용이 다른 원자력 시설에도 적용될 수 있습니다. 첫 글이 좀 철학적인 내용이 되었습니다만, 계속 흥미를 갖고 함께 하시면 좋겠습니다^^)

[원자력 안전은 원자력시설이 일으킬 수도 있는 방사선 재해로부터 인간, 사회, 환경을 보호하는 것입니다]

‘안전’(Safety)의 사전적 의미는 ‘위해 또는 위험으로부터 벗어나 있는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안전하다’는 것은 ‘현재 재해나 사고가 발생하지 않은 상태’임은 물론이고, ‘미래의 잠재적 위험(리스크)에 대한 대책도 확보’되어 있음을 뜻합니다. 우리는 각종 위험 요인들과 함께 살아갑니다. 먼 옛날에는 자연환경이 주된 위험 요인이었으나, 문명이 발달하면서 자연에 의한 위험 요인이 많이 극복된 반면 문명의 이기들이 새로운 위험 요인이 되기도 하지요. 유독화학물질, 생화학무기, 교통수단, 에너지 시설 등 많은 인공적 위험요인 중에서도 안전성에 대한 논란이 가장 무성한 것이 바로 원자력 시설이지요.

원자력 안전은 방사선과 직접 연관됩니다. 방사선에 의한 외부 또는 내부 피폭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방사선을 적절히 차폐하고, 방사성물질이 원자력시설로부터 유출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리스크(Risk) 관점에서 볼 때 방사성물질은 화학산업 등에서 취급하는 유독 물질과 유사하며, 방사성물질의 환경 유출을 방지하려면 다양한 안전수단이 마련되어야 합니다.

원자로에서는 원자폭탄에서와 같은 핵폭발(Nuclear Explosion)이 발생하지 않습니다. 원자로의 출력이 급격하게 상승하는 출력 급상승(출력 폭주)의 발생 가능성도 극히 낮으며, 최악의 출력 폭주를 가정하더라도 폭발력은 히로시마에 투하되었던 원자폭탄의 수만 분의 1 수준입니다. 최악의 출력폭주와 증기폭발, 수소폭발 및 화재를 겪었던 체르노빌 원전 사고에서도 사고가 일어난 4호기와 인접한 3호기조차 사고 후 정비를 거쳐 다시 운전되었을 정도입니다.

결국 방사선이 원자력과 관련된 거의 유일한 위험 요인입니다. 따라서 원자력에서의 안전 목표, 안전성 확보 원리, 안전성 확보 방안을 비롯한 모든 안전 활동은 바로 방사선 피폭(노출) 또는 방사성물질의 외부 누출을 방지하는 데 집중되어 있습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 2007)에서는 원자력 안전을 ‘부당한 방사선 위해(재해)로부터 작업자, 대중 및 환경을 보호하도록 적절한 운전 조건과 사고의 예방 및 사고 결과의 완화를 달성하는 것’으로 정의한 바 있습니다. 원자력 안전의 목표는 ‘발생 가능한 방사선 위해로부터 개인과 사회와 환경을 보호’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원자로는 화력발전소와는 다른 고유한 안전 특성을 지닙니다]

원자로는 안전성 관점에서 고유한 특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 원자로 운전에 따라 많은 양의 방사성물질(핵분열생성물)이 원자로 내부의 핵연료 안에서 생성되어 축적됩니다. 따라서 방사성물질과 인간 또는 환경 사이는 다중의 물리적 방벽으로 격리되어야 합니다. • 운전 중 원자로는 매우 높은 밀도로 에너지(열)를 생산하므로, 이를 적절하게 냉각하지 않으면 방벽들이 손상되어 방사성물질이 외부로 누출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정상 운전 시의 신뢰성 있는 원자로(핵연료) 냉각이 필수적입니다. • 원자로가 정지하면 핵분열 반응은 멈추지만 핵분열생성물의 방사성붕괴에 의한 에너지(붕괴열; Decay Heat)는 정지 후에도 계속 발생합니다. 따라서 원자로 정지 후에도 상당 기간 동안 지속적인 냉각이 필요합니다.

특히 붕괴열은 방사선과 함께 원자력 안전 문제를 복잡하게 만드는 핵심적인 요인입니다. 화력발전소 보일러는 운전정지와 거의 동시에 열 생산을 멈추지만, 원자로는 정지된 후에도 붕괴열을 지속적으로 제거해야 하며, 실제로 대부분의 안전설비가 이를 위한 것들입니다. 붕괴열은 원자로 정지 직후 정상운전 열출력의 약 7%이고, 3시간 후 약 1%가 됩니다. 하루가 지나면 약 0.5%가 되고, 정상 출력의 0.1%가 되려면 수 개월이 지나야 하지요. 한국표준형원전과 같은 1,000 MWe급 원전의 원자로 열출력은 약 3,000 MWt이므로, 0.1%라 하더라도 3 MW, 즉 3,000 kW에 해당하는 큰 양입니다. 그렇더라도 경수로나 중수로에서 원자로 정지 후에는 어떤 방법으로든 물이 원자로에 공급되어 핵연료가 물에 잠겨있기만 하면 더 이상 문제가 발생하지 않습니다.

아울러 낯선 위험요소인 방사선에 대한 두려움, 수백만 개의 부품을 사용하는 대규모 복합 설비이자 작동원리를 이해하기 어려운 원자력발전소에 대한 거리감, 확률이 낮아도 최악의 사고가 발생하면 파국적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공포감, 국가정책으로 추진되는 원자력 리스크의 비자발적 특성에 따른 거부감 등이 원자력 안전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듭니다. 따라서 원자력 안전을 논의할 때는 실제적 또는 과학기술적 안전성과 함께, ‘인지적 안전성’(Perceived Safety), 즉 얼마만큼 안전하다고 인식되느냐 하는 점도 매우 중요합니다.

백원필7.1.jpg

[원자로에서의 3가지 핵심 안전요건은 ‘출력(핵분열 에너지) 제어’, ‘핵연료 냉각’ 및 ‘방사성물질 격납’입니다]

이 부분은 원자로의 고유한 안전 특성에서 이미 다루었다고 볼 수도 있지만, 조금 다른 방법으로 설명합니다. 원자로가 정상운전 중일 때는 출력을 자유롭게 조절하고, 정상상태에서 벗어나는 경우에는 원자로를 확실하게 정지시키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그리고 핵분열에 의해 대량의 열이 생성되는 정상운전 기간은 물론이고 붕괴열만 나오는 원자로 정지기간에도 핵연료의 냉각이 지속적으로 보장되어야 합니다. 이상의 두 가지 요건만 완벽하게 지켜진다면 방사성물질의 외부 누출은 차단됩니다. 그러나 핵연료의 냉각에 실패할 경우에는 붕괴열로 인한 노심(핵연료) 용융 등이 일어나게 되고, 방사성물질이 원자로 밖으로 누출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방사성 물질을 적절한 방벽 안에 격납(Confinement; 억류)시킬 수 있는 기능이 요구되며, 원자로계통을 둘러싸서 방사성물질의 외부 유출을 막으면서 외부환경으로부터도 보호하는 격납용기(Containment)가 가장 중요한 기능을 합니다. 원전의 각종 안전설비들은 위의 3가지 요건 중 하나 이상의 기능을 합니다.

백원필7.2.jpg

[방사성물질의 거의 대부분은 핵연료봉 안에 있습니다]

원자력발전소에서 방사성물질은 3가지 반응으로 생성됩니다. - 핵분열: 중성자에 의한 우라늄, 플루토늄의 핵분열반응에 의해 다양한 종류의 핵분열생성물(Fission Product)이 생성되며, 원자로 내 방사능의 대부분을 차지 - 핵연료물질의 중성자 포획: 우라늄-238 등이 중성자를 흡수하여 플루토늄-239, 아메리슘-241 등 방사성 초우라늄 원소(우라늄보다 원자번호가 높은 원소)들을 생성하고, 이들의 방사성붕괴로 다른 악티나이드(원자번호가 악티늄보다 높은 원소)도 생성 - 다른 원자로 구성물질의 방사화(Activation): 원자로 구조물이나 냉각재 등이 중성자를 흡수하여 코발트-60, 삼중수소 등 방사성물질 생성

방사성물질의 대부분은 핵분열생성물이나 악티나이드 원소로서 핵연료봉 내에 존재합니다. 핵연료봉은 일정 기간 동안 원자로 안에서 사용된 다음에는 사용후핵연료 저장시설에 보관됩니다. 핵연료봉은 밀봉된 지르코늄합금(Zircaloy) 튜브, 즉 피복관(Cladding) 안에 이산화우라늄(UO2) 핵연료 소결체(Fuel Pellet)들이 분필 모양으로 채곡채곡 쌓여있는 형태이지요. 따라서 방사성물질의 대부분을 안에 담고 있는 피복관(지르코늄 합금 튜브)의 건전성이 매우 중요하고, 원자로 안에서든 사용후핵연료 저장시설에서든 피복관이 손상되지 않으면 방사성물질의 외부 방출은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핵연료봉 내에 방사성핵종들이 얼마나 존재하는가는 비율은 원자로와 핵연료의 종류, 운전 이력 등에 따라 달라집니다. 원자로가 가동 중일 때는 핵연료봉 안에 세슘(Cs), 스트론튬(Sr), 요드(I), 프로메튬(Pm), 루테늄(Ru), 텔루륨(Te), 유러퓸(Eu) (이상 핵분열생성물), 플루토늄(Pu), 아메리슘(Am), 큐륨(Cm) 등 많은 종류의 방사성 핵종들이 존재하며, 핵분열생성물에 의한 방사능이 악티나이드에 의한 방사능보다 훨씬 높습니다. 그런데 핵분열 생성물들의 반감기는 대부분 짧기 때문에, 일단 원자로가 정지된 후에는 방사능이 비교적 빠른 속도로 낮아집니다. 악티나이드 원소들은 방사능이 상대적으로 훨씬 작지만, 인체 내로 흡입되면 뼈 등에 고착되는 성질이 있는 반감기가 긴 알파선원이어서 내부 피폭과 관련하여 중요시 되지요. 사용후핵연료 1톤에서의 방사능은 원자로에서 나온 직후 1.6억 큐리(Ci) 정도이지만, 3달 후 660만 Ci, 1년 후 230만 Ci, 10년 후 30만 Ci 정도로 계속 줄어듭니다. 물론 발생하는 붕괴열도 계속 줄어들지요. 사용후핵연료는 방사능과 붕괴열을 다루기 쉬운 수준으로 낮추기 위해 최소한 수 년 동안은 수조 안에 저장(습식저장)합니다. 그 후 공기냉각 방식(건식저장)으로 바꾸거나 재처리 또는 처분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핵연료봉의 방사능보다는 극히 낮지만, 원자로 또는 원자로와 가까운 곳의 구조물은 방사화되어 방사능을 지닙니다. 또한 원자로 냉각재는 중성자에 의해 직접 방사화되거나 방사화된 구조물에서 발생하는 부식생성물들이 녹아 들어와서 역시 방사능을 띠게 됩니다. 따라서 냉각재가 순환하는 원자로냉각재펌프나 증기발생기 등도 방사성물질에 의해 일정 수준 오염이 된 상태로 운전됩니다.

원자로 냉각재와 관련 기기에서의 방사성물질 생성과 축적은 정기검사, 부품 교환, 기기 보수 등을 수행하는 유지보수 작업자들이 방사선을 피폭하는 주된 원인이 되므로, 냉각재의 방사능을 일정 수준 이하로 유지하기 위한 수질 관리가 수행됩니다. 이러한 수질관리는 ‘화학 및 체적 제어계통’(Chemical and Volume Control System; CVCS)이 담당하는데, 이 계통의 필터(Filter)와 탈염기(Demineralizer) 등에는 방사성물질이 축적됩니다. 물론 방사성폐기물 처리계통과 방사성물질 저장시설에도 방사성물질들이 위치합니다.

한편, 우리나라에서 이용하는 가압경수로나 가압중수로에서 원자로 냉각재와 분리되어 있는 2차계통(Secondary System)에는 방사성물질이 거의 존재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주증기관(Main Steam Line), 터빈 등에는 특별한 방사선 차폐장치가 마련되어 있지 않습니다. 다만 원자로 냉각재계통(1차계통)과 2차계통의 경계를 이루는 증기발생기의 튜브들이 손상되는 경우에는 방사화된 원자로 냉각재가 2차측으로 유입됩니다. 이 경우에도 다수의 핵연료가 손상된 상태가 아니라면 위험한 수준에 도달하지는 않습니다.

백원필7.3.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