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과 이야기하는 원자력안전" 6.방사선 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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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와 이야기하는 원자력 안전-6] 방사선 방호(Radiation Protection)

(방사선과 인체 영향에 대해 이야기하다 보니, 너무 기술적인 부분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걱정이 됩니다. 방사선 관련 단위부터 오해가 많고, 방사선의 영향에 대해서도 견해 차이가 첨예하여 어쩔 수 없기도 합니다만, 전문가의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어쨌든 방사선에 대한 기본적인 이야기로는 마지막 편입니다.^^)

[방사선 장해로부터 작업자와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방사선 방호’가 이루어집니다]

‘방사선 방호’(Radiation Protection 또는 Radiological Protection)란 방사선 장해(Radiation Hazards)로부터 방사선 작업자와 일반인을 보호하기 위한 개념, 요건, 기술, 활동 등을 총칭하는 용어입니다. 1895년 엑스선이 발견된 직후에는 방사선의 위험성이 제대로 인식되지 않아서 방사선 학자들이나 산업 종사자들에게서 방사선 장해가 자주 발생했습니다. 1920년대 들어 방사선 방호 노력이 체계화 되었고, 1928년 국제방사선방호위원회(ICRP; International Commission on Radiological Protection)가 결성되어 지금까지 국제적인 방사선 방호기준 등을 선도하고 있습니다. ICRP는 10~20년 간격으로 방사선 영향에 대한 새로운 지식을 반영하여 권고(ICRP Recommendations)를 발행하는데, 지난 50여년간 발행된 권고에는 1966년 권고(ICRP 9), 1977년 권고(ICRP 26), 1990년 권고(ICRP 60), 2007년 권고(ICRP 103)가 있습니다. 개별 국가들은 별도의 방사선방호위원회를 두거나 원자력 안전규제기관을 통하여 ICRP의 권고를 참고하면서도 자국의 실정에 맞는 방사선 방호기준을 정하여 시행합니다.

ICRP 103(2007년 권고)이나 이에 근거하여 마련된 국제원자력기구(IAEA; International Atomic Energy Agency)의 2014년 기본안전기준(BSS; basic Safety Standards)에서는 방사선 피폭 상황을 다음 3가지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 ‘계획피폭’(Planned Exposure) 상황: 미리 계획된 설비 운영 또는 행위에 따라 발생하는 방사선 피폭 상황 - ‘비상피폭’(Emergency Exposure) 상황: 사고, 고의적 행위, 또는 다른 예상치 못한 사건으로 인해 발생하여 긴급조치가 필요한 피폭 상황 - ‘기존피폭’(Existing Exposure) 상황: 자연 백그라운드 방사선(Natural Background Radiation)에 의한 피폭과 같이 이미 존재하는 피폭 상황

이상의 3가지 피폭 상황에 따라 방호기준은 차이를 둘 수밖에 없습니다. 이 글에서는 가장 일반적인 경우인 ‘계획피폭’에 대한 기준을 주로 소개합니다.

방사선 방호의 목적은 <결정론적 영향을 방지하고, 확률론적 영향의 발생 가능성을 합리적으로 달성 가능한 한 최소(As Low As Reasonably Achievable; ALARA)로 유지>하는 것입니다. 저선량(낮은 선량) 방사선 피폭의 영향이 아직 충분히 규명되지 않았으나, 현재 적용되고 있는 방사선 방호의 개념은 “방사선 피폭은 아무리 작은 양이라도 인체에 해로울 수 있다”는 가정을 바탕으로 합니다. 원폭 피해자 등이 받은 대량 피폭의 결과를 분석하여 단위 선량당 암 발생률을 구하고, 이것이 낮은 선량에 대해서도 적용된다고 가정(문턱없는 선형비례모델)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가정은 저선량 피폭의 영향을 과대 평가할 가능성이 크지만, 당분간 바뀌지 않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방사선 방호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ICRP는 다음과 3 가지 원칙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 ‘행위의 정당화’(Justification): 방사선 피폭을 수반하는 행위는 이로 인한 리스크를 충분히 상쇄하는 이득을 줄 수 있어야만 허용 - ‘방호의 최적화’(Optimization): 모든 방사선 피폭(사고로 인한 피폭 가능성까지 포함)에서는 경제적•사회적 인자들을 고려하여 그 확률적인 영향이 합리적으로 달성 가능한 최저(ALARA)가 되도록 조치 - ‘선량한도’(Dose Limit)의 적용: 개인이 받는 총 피폭 선량은 ICRP가 권고하는 적절한 한도 이하로 유지

이를 다른 말로 표현하면, ‘리스크를 상쇄할 뚜렷한 이득이 기대될 때만 방사선 피폭이 허용되며, 개인의 피폭선량은 선량한도를 만족해야 할 뿐만 아니라 합리적으로 달성 가능한 최저가 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방사선 피폭의 확률론적 영향을 평가할 때는 각 개인의 피폭량보다 작업자 또는 일반인 집단이 받은 유효선량의 총 합계가 더 중요하게 사용될 수 있습니다. 이를 ‘집단선량’(Collective Dose)이라고 하는데, 단위는 맨•시버트(man•Sv) 또는 맨•렘(man•rem)입니다. 1만 명이 평균적으로 1 mSv씩 피폭되었다면 집단선량은 1만 man•mSv 또는 10 man•Sv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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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사선 방호기준의 핵심은 ‘선량한도’(Dose Limit)입니다]

방사선 방호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구체적인 방호기준이 마련됩니다. 방사선 방호기준의 설정은 개별 국가의 권한이자 책임이지만, 대부분의 국가가 국제방사선방호위원회(ICRP)의 권고를 참고하여 설정합니다. 현재 각국의 방사선 방호체계는 1990년 권고를 기반으로 하는 경우가 많고, 2007년 권고의 도입도 확산되고 있습니다. 반면에 미국에서는 1966년 권고의 상당 부분이 아직 유지되고 있지요.

방사선 방호기준의 핵심을 이루는 것은 ‘선량한도’(Dose Limit)입니다. 선량한도는 ‘결정론적인 영향을 방지’하고 ‘확률론적인 영향은 사회적으로 용인될 수 있는 수준 이하로 제한’하기 위해 허용될 수 있는 피폭선량을 구체적인 수치로 정한 것입니다. 정상적인 운전 조건, 즉 계획피폭 상황에서는 이러한 선량한도가 초과되어서는 안 됩니다. 선량한도는 ‘직업상 피폭’(Occupational Exposure)과 ‘일반인 피폭’(Public Exposure)으로 구분하여 설정됩니다. 직업상 피폭이란 방사선 피폭을 수반하는 직업 종사자에 대한 것으로, 피폭자가 이미 일정 수준의 피폭을 예상하고, 이에 대한 보상도 어떤 형태로든 받고 있는 경우입니다. 반면에 일반인 피폭은 본인의 의사나 이익과 무관하게 피폭되는 경우이지요. 방사선 방호체계는 이익과 위험의 균형을 근거로 하여 확립되므로, 일반인에 대한 선량한도는 당연히 종사자의 경우보다 낮게 정해집니다.

첨부한 슬라이드에 ICRP의 1977년, 1990년, 2007년 권고와 함께 한국과 미국의 선량한도를 비교했습니다. 또한 등가선량과 유효선량을 계산할 때 사용되는 방사선가중치와 조직가중치도 제시했습니다. 선량한도는 외부 피폭과 내부 피폭을 모두 고려한 유효선량 또는 등가선량에 대해 적용되며, 여기서 내부 피폭에 대해서는 지난 글에서 설명한 ‘예탁선량’이 사용됩니다.

선량한도가 핵심적인 방사선 방호기준이지만, 이를 효과적으로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공기나 수중의 방사능 농도 또는 체내에 흡수되는 방사성물질의 양을 제한할 필요가 있습니다. 현재는 ‘연간섭취한도’(Annual Limits of Intake; ALI)와 ‘유도공기중농도’가 각 핵종별로 정의되어 이용됩니다. 연간섭취한도는 1년 동안 섭취할 경우 방사선량이 선량한도에 이를 것으로 보이는 방사능의 양이며, 1년 동안 흡입할 경우 방사능섭취량이 연간섭취한도에 이를 것으로 보이는 공기 중의 농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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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 피폭의 방호는 ‘거리’, ‘차폐’, ‘시간’을 이용합니다]

앞에서 설명했듯이 방사선 외부 피폭은 1) 방사선원(선원)으로부터 충분한 거리를 확보하고, 2) 방사선원과의 사이에 차폐물질을 두며, 3) 작업 시간을 단축하는 등의 방법으로 줄일 수 있습니다.

알파선과 에너지가 낮은 베타선은 공기 중이라도 수 cm 또는 수 m 이상 도달하지 못하므로, 선원으로부터 거리만 확보하면 장해를 원천 봉쇄할 수 있습니다. 투과력이 좋은 감마선이나 중성자의 경우에도 공기에 의한 ‘감쇄’(방사선이 물질을 통과할 때 물질과의 상호작용에 의해 반사선량이 감소하는 것) 자체는 무시할 만하지만, 방사선의 세기가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하므로, 선원으로부터의 충분한 거리 확보가 역시 효과적인 방호 수단이 됩니다.

그러나 원자력시설에 근무하거나 방사성동위원소를 이용할 때는 부득이하게 방사선원 근처에서 작업해야 하는 경우가 있지요. 이 때 방사선 피폭을 효과적으로 줄이는 방법은 적절한 차폐물을 이용하는 것입니다. 감마선이나 엑스선의 차폐에는 비중이 큰 물질(납, 우라늄 등)이 효과적이고, 고속 중성자는 가벼운 원자핵들로 구성된 감속재(물, 콘크리트, 수소화합물 등)로 에너지를 줄인 후 중성자 흡수물질(붕소 등)을 이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출력이 낮은 연구용 원자로에서는 원자로 노심(핵연료)을 깊은 수조의 바닥 쪽에 위치시키는 것만으로도 효과적인 차폐를 달성하지요. 베타선원의 경우, 에너지가 낮을 때는 단순한 용기만으로 차폐 효과가 충분하지만, 에너지가 높으면 원자번호가 작은 물질(플라스틱 등)로 1차 차폐를 하고, 그 과정에서 발생되는 엑스선은 납 등으로 차폐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마지막으로, 당연한 이야기지만 방사선 구역에서 작업할 때는 작업시간을 최소화함으로써 피폭 선량을 줄일 수 있습니다.

[방사선 내부 피폭의 방호도 다양한 방법으로 이루어집니다]

방사선 내부 피폭은 공기 흡입이나 음식물 섭취로 인해 방사성물질이 체내로 유입되어 머무르면서 발생합니다. 따라서 공기, 물, 음식물 등의 방사능 농도를 아주 낮은 수준으로 유지하는 것이 일차적으로 중요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방사성물질이 원자력 시설 등으로부터 외부로 누출될 수 있는 경로를 차단하고, 환경에서의 방사선 감시가 철저하게 이루어져야 합니다.

방사선은 색깔이나 맛, 냄새가 없어서 인간의 감각만으로는 피폭당하고 있는지 알 수 없다는 점 때문에 불안해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렇지만 적절한 방사선 검출기(Radiation Detector)만 있다면 방사선의 존재와 세기를 바로 알 수 있어서 유리한 점도 있습니다. 이 점은 다른 유독 화학물질에 대해서는 적용이 어려운 방사선 측정 고유의 장점입니다. 체르노빌 사고 때 구 소련에서 사고 발생 사실을 숨겼는데도 서구에서 알아차렸던 것은 바로 환경 방사선 감시(Environmental Radiation Monitoring) 덕분이었지요.

환경 방사선 측정으로부터 공기의 오염(Contamination)이 확인되었을 경우에는 마스크 등을 착용하여 체내 흡입을 차단하고, 가능한 한 빨리 오염 지역을 벗어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나 신체와 의복 등이 이미 오염되었을 가능성이 크므로, 즉시 제염(Decontamination) 절차를 밟아야 합니다. 방사성 핵종들이 체내에 흡입 또는 섭취되었을 경우에는, 그들이 각 조직으로 이동하여 배설되기 어려운 형태로 자리잡기 전에 가능한 한 빨리 제거하는 것이 좋습니다. 원전 사고 시에는 방사성물질이 대량 방출되기 전에 요오드를 복용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방사능이 없는 요오드가 미리 갑상선에 자리잡게 함으로써 방사능을 띤 요오드가 흡입되더라도 갑상선에 축적되지 않고 몸 밖으로 배출되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백원필6.3.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