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과 이야기하는 원자력 안전" 12. 안전 문화(Safety Cul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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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와 이야기하는 원자력 안전 – 12] 안전 문화 (Safety Culture)

[1980년대까지 우리나라의 공사 현장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었던 표어가 ‘안전제일’(安全第一)이었습니다. 어느 시점부터인가 ‘안전문화’(安全文化)라는 새로운 용어가 등장하더니 지금은 많은 이들이 즐겨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안전문화’가 불과 30년 전에 원자력 분야에서 처음으로 공식 사용한 용어라는 것을 아는 분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원자력 분야에서 적용하고 있는 안전문화의 개념을 소개합니다.^^]

[안전문화의 개념은 체르노빌 원전 사고(1986)의 원인을 분석하면서 도입되었습니다]

‘안전문화’(Safety Culture)라는 말을 누군가는 오래 전부터 사용했을 가능성이 있지만, 공식적으로는 체르노빌 원전 사고(1986년) 이후에 원자력 분야에서 처음 사용됩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국제원자력안전자문단(INSAG; International Nuclear Safety Advisory Group)에서 1988년 발행한 ‘INSAG-1: Summary Report on the Post-Accident Review Meeting on the Chernobyl Accident’에서 안전문화를 정의하고, 사고의 중요한 원인으로 지적한 것입니다. INSAG은 1991년의 INSAG-4(Safety Culture)를 통해 안전문화의 개념을 체계적으로 제시하였고, 2002년의 INSAG-15에서 안전문화의 핵심 이슈들을 제시했습니다.

(*참고로 INSAG의 현재 명칭은 원래 명칭에서 ‘자문(Advisory)’을 뺀 ‘국제원자력안전그룹’(International Nuclear Safety Group)이나, 약어는 그대로 사용한답니다.)

INSAG이 안전문화의 개념을 처음 정리한 후, 영국을 비롯한 각국의 원자력 안전규제기관과 국제기구, 학회 등에서 원자력 안전문화의 개념을 더 구체화하고, 실제 현장에 적용하기 위한 노력을 해왔습니다. 국제원자력기구에서 발행된 안전문화 관련 문서들만 20종 가까이 되며,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U.S.NRC)는 2011년 '안전문화 정책성명'(Safety Culture Policy Statement)를 발표하기도 했지요.

지금은 안전문화의 개념이 다른 분야로도 널리 확산되어 어디서나 찾아볼 수 있고, 안전행정부에서는 ‘안전문화 우수사례 경진대회’도 개최하고 있네요.

[안전문화의 의미를 살펴봅니다]

안전문화는 따로 설명하지 않아도 의미를 대충 짐작할 수 있습니다. 안전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또는 안전을 우선하는 문화가 되겠지요. 그렇지만, 산업현장에 적용하려면 좀더 구체적인 정의가 필요하며, 여기서는 원자력 분야에서 널리 받아들여지는 국제원자력기구(IAEA), 영국 규제기관(HSE), 미국 규제기관(NRC)의 정의를 소개합니다.

국제원자력기구에서는 INSAG에서 처음 정의한대로 “원자력 안전 이슈들을 그 중요성에 합당하게 최우선적으로 고려하는 조직 및 조직의 특성과 태도의 집합”(the assembly of characteristics & attitudes in organizations & individuals which establishes that, as an overriding priority, nuclear power plant safety issues receive the attention warranted by their significance)으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영국 원자력규제기관의 자문위원회에서는 “조직의 보건 및 안전 관리에 대한 헌신과 방식 및 숙련도를 결정하는 개인 및 집단의 가치, 태도, 인식, 역량 및 행동양식의 산물”(the product of individual and group values, attitudes, perceptions, competencies and patterns of behavior that determine the commitment to, and the style and proficiency of, an organization’s health and safety management)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한편,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에서는 “안전을 다른 목표들보다 강조하고 사람과 환경을 보호하기 위하여 조직의 리더와 개인이 함께 노력함으로써 얻게 되는 핵심 가치와 행동“(the core values and behaviors resulting from a collective commitment by leaders and individuals to emphasize safety over competing goals, to ensure protection of people and the environment)으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휴~~ 영어를 우리말로 번역하려니 잘 안되네요. 전문 번역가들이 새삼 존경스럽습니다. 이 밖에도 조금씩 다른 관점에서 많은 정의들이 제시되고 있는데, 기본적인 의미가 통하므로 더 다루지는 않겠습니다. 뒤에 소개하는 문서나 사이트들을 방문하시면 많은 자료를 얻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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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AG-4를 중심으로 안전문화를 설명하려 합니다]

원자력 안전문화를 좀더 상세하게 설명하는 자료는 매우, 어쩌면 너무 많습니다. 그래서 안전문화의 특성을 처음으로 체계화한 INSAG-4(1991)의 핵심 내용만을 소개합니다. 첨부한 그림 12-1은 원자력 안전문화의 주요 구성요소들을 정책 차원(Policy Level), 관리자(Manager) 차원 및 개인(Individual) 차원으로 구분하여 보여줍니다. 특별히 설명하지 않아도 그림만 보더라도 잘 이해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정책 차원에서는 확고한 안전정책을 수립하여 천명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또한 이를 이행하는데 중심적인 역할을 할 조직을 설치하고, 필요한 인력과 예산을 배정해야 합니다. 이러한 일은 국가 차원에서도 필요하고, 개별기관 차원에서도 필요합니다. 국가 차원에서는 우선 법적체계를 확립하고 안전규제기관을 설치하는 것이 중요하겠지요. 법과 규정은 체계적, 합리적으로 갖추어져야 하고, 규제기관이 기술적, 행정적 역량을 갖추어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적절한 인력과 예산이 제공되어야 합니다. 안전관련 행위를 하는 각 기관도 기관차원의 안전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효과적으로 이행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추어야 합니다.

한편, 모든 조직에서 직원 개개인의 안전에 대한 태도는 그들이 속한 조직의 작업환경에 크게 영향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관리자는 안전을 우선하는 환경과 올바른 관행을 조성해야 합니다. 관리자 스스로 모범을 보이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겠지요. 또한 직원 개개인의 책임과 권한을 분명히 하고, 이를 위해 조직체계와 절차서 등의 문서체계를 확립해야 합니다. 직원 채용 시 업무수행에 필요한 자질을 충분히 확인해야 할 뿐만 아니라, 주기적인 훈련과 교육 및 적절한 자격관리가 필요합니다. 특히, 원전 사고는 흔히 접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어서 자칫하면 안전 의식이 희미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공정한 상벌제도를 통한 동기 부여도 중요합니다. 실적 위주의 포상으로 안전이 위협받거나, 지나친 제재로 실수가 은폐되는 일이 없도록 유의해야 합니다.

안전문화 정착의 관건은 궁극적으로 개별 종사자들의 수행 여부에 달려 있습니다. 개개인이 업무 수행 과정에서 안전문화에 충실하기 위해서는 의문을 갖는 태도, 엄격하고 신중한 접근자세, 대화하는 자세 등이 매우 중요합니다. 업무를 수행하기 전에 자신이 업무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지, 잘못될 가능성은 없는지, 잘못을 막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를 질문해야 합니다. 이러한 태도를 가져야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실수를 찾아낼 수 있겠지요. 업무 수행에 있어서는 절차를 잘 이해하고 엄격하게 준수해야 하며, 문제가 발생하면 작업을 멈추고 신중하게 대처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임무를 수행하면서 얻은 정보를 서로 교환하고 작업 내용을 충실히 기록하며, 안전성 확보를 위한 새로운 제안을 하는 등의 대화하는 태도 또한 중요합니다.

한편, IAEA GS-G-3.1(Application of the Management System for Facilities and Activities)에서는 튼튼한 안전문화의 5가지 특성과 36가지 속성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IAEA의 안전문화 평가 서비스는 이를 기반으로 이루어지는데, 5 가지 특성은 다음과 같습니다. - 안전은 분명하게 인정 받는 가치이다 - 안전을 위한 리더십이 분명하다 - 안전에 대한 책임소재가 분명하다 - 안전이 모든 활동에 통합되어 있다 - 안전에 대한 지속적인 학습이 추구된다

이와는 별도로 INPO(Institute of Nuclear Power Operations)와 WANO(World Association of Nuclear Operators)에서도 건강한 안전문화의 원칙과 속성을 제시하고 있는데, 더 이상의 설명은 생략합니다.

한편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에서는 긍정적 안전문화의 9가지 특성을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 있습니다. 1. 리더십의 안전 가치와 행동: 고위자(Leaders)는 자신의 결정과 행동에서 안전에 대한 의지를 보여준다. 2. 문제 확인 및 해결: 안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문제는 신속하게 확인하여 충분히 평가하고, 중요도에 따라 신속하게 해결하고 바로잡는다. 3. 개인 책임: 모든 개인은 안전에 대한 개인적 책임을 진다. 4. 업무 프로세스: 작업행위를 계획하고 통제하는 프로세스는 안전이 유지될 수 있도록 이행한다. 5. 지속적인 학습: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방법을 학습할 수 있는 기회를 모색하고 실행한다. 6.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환경: 직원들이 보복, 협박, 괴롭힘 또는 차별을 두려워하지 않고 안전문제를 제기할 수 있도록 안전중시 근무환경을 유지한다. 7. 안전에 관한 효과적 소통: 소통을 통해 안전에 대한 주목(집중적인 관심)을 유지한다. 8. 서로 존중하는 직장 환경: 신뢰와 존중이 조직 내에 퍼져있다. 9. 의문을 갖는 태도: 오류나 부적절한 행위를 유발할 수 있는 불일치를 식별하기 위해, 자만하지 않고 기존 조건과 행위에 계속 의문을 갖는다.

[안전문화에 대해 더 공부하시려면 다음 자료들을 읽으시면 됩니다]

[국제원자력기구]

- INSAG-4(1991): Safety Culture http://www-pub.iaea.org/MTCD/publications/PDF/Pub882_web.pdf

- INSAG-15(2002): Key Practical Issues in Strengthening Nuclear Safety

http://www-pub.iaea.org/MT…/publications/PDF/Pub1137_scr.pdf

- Safety Guide No. GS-G-3.1(2006): Application of the Management System for Facilities & Activities

http://www-pub.iaea.org/MT…/publications/PDF/Pub1253_web.pdf

[영국]

- HSL/2002/25: Safety Culture: A Review of the Literature http://www.hse.gov.uk/research/hsl_pdf/2002/hsl02-25.pdf

[미국] 

- U.S.NRC Safety Culture Policy Statement: www.nrc.gov/about-n…/safety-culture/sc-policy-statement.html

- INPO Traits of a Healthy Nuclear Safety Culture (Rev. 1)

http://nuclearsafety.info/…/Traits-of-a-Healthy-Nuclear-Saf…

이 밖에도 OECD/NEA, WANO 등에서도 관련 자료들을 만들어내고 있는데, 더 소개하면 오히려 혼란스럽게 할 것 같습니다.

[마무리하며]

지금까지 안전문화에 대해 살펴보았는데, 안전문화의 개념을 마음가짐이나 태도 또는 행동양식 등으로만 단순화시키는 것을 피해야 합니다. 안전 이슈들이 각각의 중요성에 걸맞는 관심을 받고, 대비되고,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조직과 개인 차원에서 갖추어야 하는 가치관과 행동양식, 이를 뒷받침하는 제도와 체계를 포괄하는 개념입니다, 여기에는 안전특성과 위험요소에 대한 올바른 이해, 최상의 과학기술지식에 대한 존중이 기본이 되어야 하고, 유연한 자세로 투명하게 소통하면서 지속적으로 학습하는 자세가 필수적입니다.

여담입니다만, 'Culture'를 한자문화권에서 '文化'로 번역하는데, 영어권에서 연상하는 의미와 동양에서 연상하는 의미가 같지 않을 수 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국제회의에서 영국인과 미국인이 단어를 놓고 신경전을 벌이는 경우도 보았습니다. 안전문화에 대한 정의는 제가 적당히 번역한 것보다 원문을 보면서 강조점의 차이를 살펴보시는 것도 좋겠습니다, 그리고 안전문화도 국가나 조직의 National Culture 또는 Organizational Culture의 일부이므로, 안전문화만을 따로 떼어내어 강조하더라도 효과를 보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여기까지 읽으신 분은 나가시기 전제 미국원자력규제위원회의 정책성명에서 제시한 긍정적 안전문화의 9가지 특성(두번째 슬라아드의 표 12-1)을 다시 한 번 읽어보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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