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과 이야기하는 원자력 안전" 5. 방사선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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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와 이야기하는 원자력 안전-5] 방사선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

(*앞에서 방사선에 대한 기본적인 사항을 소개했는데, 이번에는 방사선이 인체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글을 작성하다보니 길어져서, 원래 한꺼번에 다루려던 ‘방사선 방호’는 다음 편에서 소개합니다.)

[방사선 인체 영향에는 세포 사멸이 원인인 ‘결정론적 영향’과 세포 돌연변이가 원인인 ‘확률론적 영향’이 있습니다]

방사선이 생명체의 조직을 지날 때는 조직 세포를 이루는 분자들과 직간접적으로 작용하여 구조를 변형시킬 수 있습니다. 인체 영향 측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DNA가 손상되는 경우인데, 대부분은 자체적으로 곧 복구됩니다. 그러나 DNA가 영구적으로 손상되어 세포가 사멸하거나 돌연변이가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소수의 세포가 사멸하는 경우에는 인체 조직 내에 같은 기능의 세포가 많기 때문에 대개는 조직의 기능을 유지하는데 어려움이 없습니다. 그러나 많은 세포들이 집단적으로 사멸하면 조직의 기능이 마비되는데, 이를 ‘결정론적’(Deterministic) 또는 ‘비확률론적’(Non-stochastic) 영향이라 합니다. 피부 반점, 수종 및 궤양, 백내장, 정자 감소 등 특정 조직에서 나타나는 현상들과 몸의 넓은 부분에 대량 피폭될 때의 사망 등이 그 예입이다. 결정론적 영향은 증상별로 특정한 방사선량, 즉 ‘발단선량(문턱선량)’(Threshold Dose) 이상에서만 관찰되며, 선량이 높을수록 증상이 심각해지는 것이 특징입니다. 단기간에 대량의 방사선에 노출되었을 때 급성으로 발생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좀더 낮은 선량에서 장기간 피폭될 때도 나타날 수 있습니다. 결정론적 영향은 250 밀리시버트(0.25 시버트) 이하의 선량에서는 관찰되지 않고, 대체로 1,000 밀리시버트(1 시버트) 이상부터 중요한 증상들이 관찰됩니다. 4,500 밀리시버트(4.5 시버트)에서는 절반 정도가 1 개월 안에 사망하며, 7,000 밀리시버트(7 시버트)의 피폭에서는 거의 대부분이 1 개월 안에 사망합니다. 결정론적 영향은 원자력 시설에서 방사선 관리가 적절히 수행되는 경우에는 전혀 발생하지 않으나, 사고로 인해 대량의 방사선에 노출되면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한편, 세포에 돌연변이가 발생할 경우, 돌연변이 세포는 주위의 다른 세포들과 이질적이 되므로 시간이 지나면서 도태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만, 그 중에서 극소수가 비정상적인 증식 능력을 지닌 ‘암’ 세포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또한 돌연 변이가 생식세포에서 발생하는 경우에는 그 영향이 자손에게 전해지는 ‘유전적 영향’(Genetic Effect)이 나타날 가능성도 있지요. 이러한 영향은 장기간에 걸쳐 확률론적으로 이루어지는 세포 변화 과정을 통해 나타나므로 ‘확률론적 영향’(Probabilistic/Stochastic Effect)이라 하며, 대표적인 예가 암, 백혈병, 유전 결함 등입니다.

일본 원폭 피해자 연구결과 등으로부터 유효선량 100밀리시버트 이상의 방사선 피폭이 있을 때 암 발생 확률이 피폭선량에 대체로 비례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비례관계가 어느 선량까지 계속 성립하는지, 매우 낮은 수준의 방사선 피폭이 실제로 해로운 것인지는 아직 명확하지 않습니다. 세포 돌연변이의 대부분은 방사선 이외의 영향(약물, 가스, 흡연 등)에 의한 것이어서 작은 방사선량의 확률론적 영향을 명확하게 규명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지요.

방사선 영향(장해)을 구분하는 방법에는 이 밖에도 피폭자에게 직접 나타나는 ‘신체적 영향’과 후손에게 나타나는 ‘유전적 영향’으로 구분하기도 하고, 피폭 시간과 증상 진행속도에 따른 ‘급성 영향’과 ‘만성 영향’ 구분, 증상이 나타나는 범위에 따른 ‘전신 영향’과 ‘국소 영향’ 구분 등 다양합니다. 방사선의 인체 영향을 구분하는 대표적인 방법들은 첨부한 슬라이드에 예시했습니다.

[낮은 선량의 방사선이 정말로 해로운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습니다]

방사선 방호에서는 현재 지식이 충분하지 않은 점을 반영하여 ‘낮은 방사선량이라도 암 발생률이 선량에 비례하는 것으로 가정’합니다. 이를 ‘문턱없는 선형비례 모델’(LNT 모델, Linear Non-Threshold Model)이라 하는데, 이를 통해 불필요한 방사선 피폭을 피하고, 되도록 피폭선량을 낮추도록 유도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불확실한 부분이 있으면 안전한 방향으로 가정하는 것을 ‘보수적’(Conservative) 가정이라고 하는데, 원자력을 비롯한 안전 분야에서 흔히 채택되는 접근방법이지요.

그러나 암 발생에도 문턱선량이 있어서 일정 수준 이하의 방사선 피폭은 인체에 해롭지 않다는 연구결과도 다수 존재합니다. 예를 들어 인도의 케랄라 지방에서는 연간 자연 방사선량이 13 mSv(세계 평균의 5배 이상)인 지역에 10여만 명이 거주하고, 브라질에서는 연간 자연 방사선량이 120 mSv 수준으로 매우 높은 곳에도 100여 명이 거주하고 있는데, 암이나 유전 결함의 비율이 다른 지역들보다 높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또한 매우 낮은 선량의 방사선 피폭은 생명체의 활성을 촉진시켜서 오히려 이득을 가져오는 현상, 즉 방사선 호메시스(Radiation Hormesis)를 보여주는 연구 결과들도 존재합니다. 적어도 인류를 비롯한 지구상의 모든 동식물이 진화하고 적응해온 자연방사선량 수준은 해롭지 않으리라고 믿는 것도 합리적인 생각일 겁니다. 그렇지만, 저선량 방사선의 영향이 명확하게 밝혀지기 전까지는 “다른 이득이 없다면 낮은 선량이라도 방사선 피폭은 가능한 한 피하고, 일상생활에서 마주하거나 불가피한 상황에서의 낮은 선량의 피폭을 겪었다면 크게 걱정하지 않는 것”이 현명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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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사선 피폭에는 외부피폭과 내부피폭이 있습니다]

방사선 피폭(노출)은 신체 외부의 '방사선원'(Radiation Source)에 의한 ‘외부 피폭’(External Exposure)과 방사성물질을 인체 내에 섭취하거나 흡입했을 경우의 ‘내부 피폭’(Internal Exposure)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외부 피폭의 경우 투과력이 좋지 않은 알파선과 베타선은 대체로 큰 문제가 되지 않고, 감마선과 중성자 등 투과력이 좋은 방사선이 주된 고려 대상입니다. 가동 중인 원자로나 가속기 근처에 있을 때 받게 되는 방사선이나 엑스선 또는 CT 촬영 시의 방사선 피폭 등은 모두 외부피폭에 해당하지요. 외부 피폭에 대해서는 1) 방사선원(단순히 ‘선원’이라고도 함)으로부터 충분한 거리를 확보하고, 2) 선원과 사람 사이에 ‘차폐물질’(Shielding Material)을 두며, 3) 선원 근처에 머무르는 시간을 최소화하는 방법으로 피폭선량을 줄입니다. 제가 원자력 안전 강의를 할 때 꼭 문제를 내곤 했는데, ‘거리’, ‘차폐’, ‘시간’으로 기억하면 편리합니다.

내부 피폭은 원자력 시설의 사고로 인해 방사성물질이 외부로 누출될 때 중요해집니다. 그 이유는 방사성동위원소가 일단 신체 내에 흡수되면 밖으로 배출될 때까지 방사선을 지속적으로 방출하고, 방사선원이 신체조직과 밀착되어 있어서 알파선과 베타선에 의한 피폭도 중요해지기 때문입니다. 몸 안으로 들어온 방사성물질은 계속 붕괴할 뿐만 아니라 신체순환작용에 의해 외부로 배설되기도 하므로, 체내의 방사능이 시간에 따라 감소합니다. 방사성붕괴의 반감기가 짧고 외부로의 배설속도도 크다면, 방사능이 빠른 속도로 감소하여 장해 발생의 위험은 크지 않을 것입니다. 반면에 반감기가 길고 외부 배설이 잘 되지 않는 경우에는 장해 위험도가 커집니다. 몸 안으로 들어온 방사성동위원소의 원자핵 개수가 방사성붕괴와 배설작용의 복합적인 영향으로 절반으로 줄어드는데 걸리는 시간을 ‘유효 반감기’(Effective Half-life)라고 하며, 방사성붕괴만을 고려한 반감기보다 짧습니다.

내부 피폭과 관련하여 ‘예탁선량’(Committed Dose)이라는 개념이 사용되는데, 방사성물질이 섭취된 후 장기간에 걸쳐 특정 장기 또는 인체에 가하게 될 총 선량을 의미합니다. 인체에 흡수된 방사성핵종은 전신에 골고루 퍼지지 않고, 특정 장기에 집중적으로 분포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경우 각 조직이 받는 등가선량은 서로 크게 다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핵분열생성물의 일종으로 원자력 안전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요오드-131은 갑상선에 주로 축적되므로 흡수량이 많을 경우에는 갑상선 암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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