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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원자력 발전사
2017년은 1958년 우리나라에서 원자력법이 발효된 이래 60년의 역사를 맞이하는 해이다. 재정·기술·인적자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초기 20여 년의 태동기를 지나 40여 년의 짧은 기간에 우리의 원자력기술은 국내수요의 자급에서 2010년 UAE에 원전 4기와 요르단에 연구용원자로 수출까지로 이어졌다. 원자력發電 전 분야에서 세계적인 기술국 위치에 오른 우리나라 원자력기술 발전사를 크게 태동기, 발전성장기, 기술자립기, 기술공급기로 나누어 주요한 내용들을 간략하게 기술하면 다음과 같다. 시기구분은 절대적이 아님을 밝혀둔다.
목차
원자력 태동기(1950년대 ~ 1970년대 초반)
6. 25전쟁 후 폐허복구와 국가부흥이라는 절대적 가치추구에 가진 모든 자원을 투입해도 부족하기만 했던 상황에서도 정부는 미래 한국의 부강을 위해 원자력에너지기술 확보 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하였다.
- 정부조직 설치 : 정부 내에 원자력정책을 수립하고 추진할 관련조직을 설치하여(1956년, 문교부 원자력과) 원자력법을 발효시키고(1958년) 연구기관으로 원자력연구소를 설립하였다(1959년).
- 원자력 인력양성 : 인력양성 초기에는 교육을 담당할 전문 인력과 설비·시설이 없어서 IAEA로부터 이동 실험실과 전문가를 초청하여 인력 양성을 시작하였다. 또한 정부는 1954년부터 10년간 237명의 국비유학생을 선발하여 IAEA 및 미국, 영국, 캐나다의 원자력연구소 훈련센터에 파견하여 원자력기술 습득을 통한 인력양성을 추진하였다. 소요된 비용은 정부달러($)와 미국이 원조한 달러($)를 사용하였다. 국비유학생들은 귀국하여 정부, 연구소 및 대학에서 원자력정책수립·집행, 원자력 이용연구, 대학에서 미래의 원자력기술입국을 위해 지식 전파와 기술인력 양성에 기여하였다.
- 대학에 원자력공학과 설치 : 원자력연구와 원자력발전을 주도할 기초 인력 양성을 위해 대학 내에 원자력 전공학과를 설치하기로 결정하고 한양대학교(1958년)와 서울대학교(1959년)에 원자력공학과를 설치하여 전문 인력 교육을 시작하였다.
- 연구용원자로(연구로) 도입 : 원자력 기초기술 이해와 인력 양성을 위한 본격적인 정책 추진으로 1959년 연구로 1호기를 도입하기로 결정하고 1962년에 우리나라 최초 연구로인 TRIGA Mark-II(100kWt) 가동을 시작하였다. 국비유학생들 일부가 때맞추어 돌아와 건설에 참여하고 원자로의 정적·동적 특성실험을 통한 원자력 이해와 안전운전 및 이용실험에 큰 도움을 주었다.
- 원자력발전소 건설 : 1인당 GDP가 290여$에 불과했던 1970년 원전 도입 결정 후 최초 원전인 고리 1호기(58.7만 kw)를 1978년에 준공·상업운전을 시작했다. 고리1호기 건설은 국가 최대의 단위사업으로 1,560억 원이 투입되었으며 우리나라는 세계 21번째 원전보유국이 되었다. 당시 우리의 산업인프라가 전무했기에 제한된 분야에만 단순하청으로 참여할 수밖에 없었던 100% 일괄도입방식인 Turnkey 구매사업이었다. 발전소 운영인력은 기술공급회사에 파견되어 관련 훈련을 받았다. 고리1호기에 이어서 월성 1호기(67.9만kw)와 고리 2호기(65만kw) 건설이 착수되었고, 고리2호기는 Turnkey 구매가 아니라 사업자주도형의 첫 시험단계로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두 원전은 1983년에 준공되어 본격적인 원자력발전 시대가 열리기 시작했다.
發展성장기(1970년대 중반 ~ 1980년대 중반)
인력, 재정, 기술 등의 원자력 발전여건이 아직 자리 잡지 못한 상황에서 정부는 나름 강력한 원자력발전 정책을 추진한 시기였으며, 원자력기술 습득과 축적에 집중하여 우리나라 원자력기술이 발전하고 성장하는 시기였다.
- 원전 건설 : 원전 기자재 국산화율을 높이고 기술축적을 도모하기 위해 Turnkey 계약에서 벗어나 고리 3,4호기부터 사업자주도로 분할계약방식인 Non-Turnkey 방식을 채택하고 국내의 건설사 및 엔지니어링 전문회사를 참여시켰다. 한빛 1,2호기와 한울 1, 2호기가 연이어 발주되고 국내 산업체의 참여 및 국산화율의 증대로 1980년대 후반까지 모두 완공되어 원자력발전이 산업발전에 필요한 동력을 제공하는 구심점 역할을 하였다.
- 원자력發電기술 : 원전건설에서 엔지니어링 기술의 중요성과 국산화 필요성을 인식하고 KABAR(1975년))를 설립하여 KNE(1976년)와 KOPEC(1982년)을 거쳐 지금의 KEPCO-E&C가 되었다. KEPCO-E&C는 1970년대에 미국 Bechtel사에 기술자를 파견하여 엔지니어링 기술을 습득하면서 고리3,4호기와 한빛1,2호기 엔지니어링, 구매 등의 용역사업에 참여하여 기술능력을 제고시켰다. 또한 KEPCO-E&C사는 1979년 벨기에의 Belgoatom사와 협력으로 원자력발전 AE 전반의 기초기술을 습득하였다. 핵연료는 원전공급자가 공급하였기에 기술국산화를 추진할 여건이 되지 못했으나 원자력산업 발전을 위해 1982년 현재의 KEPCO-NF(당시 원전연료주식회사)를 설립하여 기술국산화를 추진하기 시작했다. 기기 및 기자재 분야는 1960년대 중공업발전 정책에 따라 기초기반 능력은 갖추었으나 전문기술이 없어서 겨우 일부 기자재 공급을 맡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1981년 정부의 발전설비공급 일원화 정책에 따라 지금의 두산중공업(당시 한국중공업)이 발전설비주기기 공급자가 되어 한빛1,2호기와 한울1,2호기 기자재를 제작·공급하면서 기술능력을 신장시키고 원전기자재 기술기반을 확고하게 구축하면서 국산화사업을 추진하게 되었다.
- 원자력 연구개발 : 1972년에 연구로 2호기 TRIGA Mark-III(2MWt)가 가동되고 우리기술로 1호기의 출력을 250kWt로 증강시켰다. 2호기 건설에는 국내 산업체의 참여를 극대화하여 산업체의 기술축적에 기여하였다. 연구개발은 원자력연구소에서 동위원소 연구·생산, 방사화학, 노물리, 원자로공학, 생물 및 보건물리, 방사선 의학 및 농업연구 등의 기반연구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1973년 원자력연구소의 민영화 이후 원자로기술개발, 원자력안전성, 원전설계 및 엔지니어링 등의 원자력발전기술에 대한 연구개발이 수행되기 시작했지만 전문인력 및 연구예산의 부족으로 연구심도는 깊지 않았다. 특히 후행 핵연료주기기술 연구개발을 전담할 핵연료개발공단이 원자력연구소에서 분리·설립되었으나(1976년) 핵무기개발을 위한 연구기관이라는 오해를 받게 되면서 국제정치·외교적인 이유로 1981년 다시 원자력연구소와 합쳐졌다.
기술자립기(1980년대 중반 ~ 2000년대 중반)
1980년대 중반에 가동원전이 5기가 되었고 원자력발전계획에 따라 장차 30여기의 원전 운영이 예정됨에 따라 원전관련기술 국산화와 고도화가 필수적으로 요청되었다. 이에 선진기술을 보유한 외국의 기술공급회사와 기술제휴 및 협력으로 관련기술을 도입하고 이를 소화하여 기술자립에 이르게 된다.
- 경수로핵연료 국산화 : 원전 수가 증가하여 핵연료 제조·공급의 경제적 분기점에 이르게 되어 경수로 핵연료기술(설계, 엔지니어링, 제조) 자립화가 1982년부터 추진되었다. 핵연료제조회사인 KEPCO-NF(당시 KNF) 설립에 이어 핵연료기술 전체를 도입하기 위하여 국제입찰경쟁을 통해 1985년 독일 Siemens-KWU사를 선정하였다. 1986년부터 원자력연구소에서 노심 및 핵연료 설계인력을, KEPCO-NF에서 핵연료제조 엔지니어를 KWU사 현지에 파견하여 공동설계, 제조기술 훈련 및 기술도입을 통해 관련기술을 자립하고(당시 중수로 핵연료 설계·제조기술은 이미 자립되어 자력으로 핵연료를 공급하고 있었음) 국내 가동 중 경수로 원전(고리1,2,3,4호기, 한빛1,2호기, 한울1,2호기) 모두에 5~10주기(cycle) 분량의 국산핵연료를 공급하였다. 그러나 1996년 핵연료산업(설계, 엔지니어링, 제조)이 KEPCO-NF로 일원화 된 후 KWU기술을 폐기하고 미국 웨스팅하우스사 기술을 도입하여 현재의 기술로 완전 국산화하여 국내원전의 소요 전량을 공급하고 있다.
- 원전설계기술 국산화 : 원전설계기술 국산화 계획에 따라 한빛3,4호기 설계기술을 도입하기 위해 1985년 원전 NSSS 및 초기노심설계, 기자재 공급을 국제공개입찰로 발주·평가하여 1986년 미국 ABB-CE사(현재의 웨스팅하우스사에 흡수됨)를 기술공급사로 선정하였다. 1986년 말 한국원자력연구소는 NSSS 및 초기노심설계를 담당하여 설계인력을 Windsor ABB-CE사에 파견하여 공동설계를 시작하고 두산중공업은 기자재 인력을 미국 Chattanooga 현지에 파견하여 기술훈련 및 기술습득을 통해 기자재 공급기술(설계, 엔지니어링, 제작) 능력을 확보하게 되었다. BOP 및 AE 기술 분야를 담당한 KEPCO-E&C도 인력을 미국 AE기술공급사로 선정된 Sergeant & Lundydp 파견하여 발전소 BOP 및 AE 공동설계와 이와 병행하여 기술훈련을 진행하였다. 원전발주자인 한국전력(주)은 ABB-CE사와 공동설계, 기술훈련과 병행하여 별도의 기술전수계획(Technology Transfer Contract)을 체결하여 기술의 완전흡수를 차질 없이 추진하게 하였다. 한빛3,4호기가 상업발전을 시작하면서 원자력연구소는 NSSS 설계, 초기노심 및 핵연료 설계기술과 설계인력을 1996년 각각 KEPCO-E&C와 KEPCO-NF에 완전히 이관하여 산업체가 원전설계를 주관하게 되었다. 1996년 한빛3,4호기 완공 당시 원전설계기술 자립도는 95% 수준에 이른 것으로 평가되었다.
- 원전설계 표준화 및 고도화 : 1980년대 초까지 가동 중이거나 건설되는 원전은 모두 외국에서 도입한 것으로 다국적 인허가 기준과 설계차이, 기자재의 호환성 문제 등으로 기술자립이나 국산화에 어려움이 많았다. 이에 정부는 1983년부터 국책사업으로 NSSS 및 BOP 설계표준화 사업을 3단계로 추진하였다. 표준화사업은 국내실정에 맞는 표준원전의 개념을 정립하고 최적의 설계개선연구를 수행하였으며 한빛3,4호기 설계·건설 사업을 통해 설계검증을 하였다. 표준화사업은 설계, 엔지니어링 및 운전경험에 근거하여 중간진입전략을 택하였다. 1단계에서는 NSSS 및 BOP에서 설계개선 항목을 상세하게 도출하고, 2단계에서는 도출된 기술항목에 대한 연구개발을 수행하였으며, 3단계 에서는 한빛3,4호기를 참조발전소로 하여 후속원전에 적용이 가능한 기술을 선별하여 개선하였다. 표준화사업을 통해 한국표준원전인 한울3,4호기 설계가 완성되었으며 설계기술의 고도화로 이어졌다.
- 원자력 중장기 연구개발 : 1990년대 초반까지도 충분하지 않은 예산과 실용적 요구가 빈약하여 목표가 뚜렷한 연구개발과제는 거의 없이 매년 같은 주제가 어렵게 반복되는 현상이 이어져왔다. 정부는 연구개발의 효율성과 결과활용도를 높이기 위해 중장기 연구개발 정책을 추진하기로 하고 1992년부터 시행하였다. 그러나 본격적이고 체계적인 중장기 연구개발은 원전설계사업의 산업계 이관으로 보상받은 원자력연구개발 기금을 재원으로 하여 1997년부터 5개년 계획으로 추진되고 있다. 분야는 환경과 상황에 따라 틀과 명칭이 바뀌어 왔지만 원자로개발, 핵주기 기술, 원자력안전, 방사선기술 및 원천기반을 내용으로 하는 5개로 구성되어 있다. 원전산업현장에서 필요한 기술에 대한 연구개발은 산업체가 주관하여 추진하고 있다.
- 연구용원자로 HANARO : 연구로 1,2호기의 용량과 활용성에 한계가 있고 원자력 기술자립을 위한 핵연료 및 기자재의 조사시험, 방사성동위원소의 자급, 중성자 과학연구 등을 위한 대용량 연구로 건조 필요성이 제기되어 1980년대 초반에 독자적인 설계·건조 계획이 수립되었다. 사업은 1985년부터 5단계로 추진되었는데, 개념설계로 노형선정(1단계), 선정 노형에 대한 엔지니어링 기본자료 생산(2단계, 캐나다 AECL과 공동연구로 수행), 원자로 및 부대설비 상세설계(3단계), 건설·기기발주·설치공사(4단계), 계통성능시험 등 시운전(5단계)을 거쳐 1996년 6월 건설을 완공하였다. 부분적으로 AECL사와 협력하였지만 우리 독자적으로 완성한 기술이라고 할 수 있다.
- 안전규제의 독립 : 원자력을 개발하던 초기에는 규제보다는 진흥에 중점이 둠으로서 규제관리의 중요성에 다소 소홀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원전건설 확대 등 원자력발전 산업이 빠른 속도로 촉진되면서 안전규제업무가 확대되고 따라서 규제인력 수요가 급증함에 따라 원자력연구소에서 담당하던 규제업무를 1990년에 분리하여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을 설립하였다. 그러나 정부의 동일부처에서 진흥과 규제를 통괄하던 상황은 계속되고 있었다. 2011년 3월 일본 후쿠시마원전 사고로 인해 진흥과 규제 관리기구의 물리적 분리가 강력하게 요구됨에 따라 2011년 10월에 원자력규제를 담당할 대통령 직속(현재는 국무총리 직속으로 이관)의 독립기구인 원자력안전위원회를 설립하고 규제업무를 교육과학기술부에서 원안위로 이관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기술공급기(2000년대 중반 ~ 현재)
2000년대 초·중반은 기존에 건설되던 원전을 제외하고 신규 건설이 주춤하면서 원자력발전 산업은 다소 침체상태였다. 그러다 2000년대 후반 세계가 원전건설을 추진하던 원자력 르네상스라고 일컫는 시기에 우리나라도 원자력기술 수출에 총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는 미국, 프랑스, 러시아에 이은 세계 4번째의 원전수출국이자 원자력기술을 공급하는 국가가 되었으며 세계적으로 우리나라의 원자력 위상을 확고히 하게 되었다.
- 대용량 원전 수출 : 2008년 UAE가 원전 4기 건설을 발주하여 우리나라, 프랑스, 미국, 일본이 치열하게 경쟁한 끝에 2009년 12월 우리나라가 공급국으로 선정되어 원자력 역사의 큰 획을 긋게 되었다. 수출원전은 우리가 독자적으로 개발한 최신형 APR1400으로 신고리3,4호기로 2008년에 건설허가를 받아 건설 중에 있는 원자로였다(신고리 3호기는 2016년 12월 상업운전 시작함). 운전도 해보지 않은 원자로였지만 UAE는 우리기술의 우수성을 인정한 것이다. 원전4기는 2017년에 1호기 준공 후 순차적으로 2020년에 4호기가 가동되는 일정으로 2017년 3월 현재 건설공기에 차질 없이 예정대로 진행 중이며 년 말경에 가동될 전망이다. 2011년 3월 일본 후쿠시마원전 사고로 원전 안전성에 대한 세계적인 관심으로 원전수출시장이 침체된 상황이지만 새로운 수출을 위한 노력이 경주되고 있다.
- 연구용원자로 수출 : UAE에 원전을 수출한 같은 때인 2010년 12월에 연구용원자로를 처음으로 요르단에 수출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연구로 수출경험이 많은 아르헨티나와 치열한 경쟁 끝에 이루어낸 성과이다. 연구로는 발전용 원자로와는 달리 표준형이 없이 수요자의 요구조건에 맞추는 맞춤형으로 공급한다. 한 번도 연구로를 수출해 본 경험이 없지만 우리 독자기술로 설계·건설하고 15년 여 성공적으로 운영해온 HANARO 기술과 경험을 인정한 결과이다. 요르단연구로 JRTR (Jordan Research and Training Reactor, 5MWt)은 2016년 12월에 준공되었다.
- 원자력 부가가치기술 수출 : UAE에 원전수출은 원전설계·엔지니어링·운영 등의 경험이 매우 풍부한 우리의 전문기술인력과 우수한 대학교육시스템 등의 부가가치기술까지 수출하는 효과로 이어졌다. 이는 우리나라 원자력기술과 전문가 능력의 우수성과 신뢰성을 확인시켜주는 기회가 될 것이며, 그 결과는 새로운 원전수출을 간접적으로 이끌 수 있는 동력이 될 것이다.
- SMART 수출협력 : SMART는 우리 기술로 개발한 SMR(Small Modular Reactor)형의 열출력 330MWt 일체형 원자로이다. 1997년부터 개발에 착수하여 2012년 SMR형으로는 세계최초로 표준설계인가를 취득하였으며 분산전원, 해수담수화 에너지원 등 다목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원자로이다. 2015년 사우디아라비아는 SMART원전 2기 건설타당성 평가목적으로 한국원자력연구원과 PSAR작성 PPE(Pre-Project Engineering) 협력을 착수하였다. 3년 계획의 PPE사업과 함께 사우디 엔지니어 30여명이 한국원자력연구원에서 기술전수교육을 받고 있다. PPE사업 평가결과로 건설타당성이 확인되면(2020년) SMART원전 2기를 사우디아라비아에 건설하고 나아가 후속원전 건설 및 제3국 진출을 우리나라와 공동으로 추진하기로 협약되어 있다.
원자력기술 선진국에 진입한 우리나라는 2017년 현재 수출시장 개척과 1500MWe급 APR+원자로, 제4세대형(Gen IV) 원자로 등 신형원자로 개발에도 지속적인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